지난 476호 발행일, 신문 배달까지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와 쉬고 있었습니다. 온전히 쉬고 싶기는 했지만, 공대생의 일상은 그리 녹록지 않죠. 책상에 앉아 설렁설렁 과제를 하면서 잠깐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흔히 말하는 ‘철덕’은 절대 아니지만,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기차를 타는 것을 훨씬 좋아합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대전과 집을 왔다 갔다 하느라 KTX를 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단지 이동을 위해서 기차를 타는데, 그럴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완행열차를 타는 것은 버티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무궁화호를 타보고 싶었습니다. 떠나기로 결정하고 기차에 올라타기까지 채 50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충 꾸린 옷들과 노트북,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순천에 사는 친구 자취방에 가도 된다는 확인을 받고 순천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KTX를 탈 때보다 조금 더 덜컹거리고, 조금 더 시끄럽습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여유로운 기차에 매 역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제 옆을 지나갑니다. 조금은 부산한 기차 내부에는 여러 사람들의 하루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호남선 기차는 처음 타봐서, 생소한 역들에 정차할 때마다 휴대폰으로 이번 역엔 어떤 특징이 있는지 검색해보았습니다. 과거에 큰 사고가 있었던 역도 있고, 역의 위상이 끊임없이 바뀌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역 주변엔 무엇이 있는지도 지도 앱으로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역전인데도 허허벌판인 곳도 있지만, 역 중심으로 구역이 발전한 곳도 있었습니다.

이후 제가 머문 곳은 순천이었지만, 이 잠깐의 기행 동안 오직 순천을 느끼다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에서 발을 뗀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듣습니다. 제가 지나가고 있는 역, 혹은 그 지역에 서려진 무언가를 겉핥기 수준도 안 되지만 알아보고 느껴봅니다. 생각보다 그런 재미가 쏠쏠합니다.

충동적으로 떠나버렸던 하루는, 지루했던 그 순간부터 목적지까지 뻗어간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여행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흔한 일상도 이런 여행과 같은 하루가 될 수 있을까요. 아직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기에 저는 떠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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