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마셜 - '시카고'

어딜 가나 넘실대는 술과 재즈와 조명, 매일 밤 범죄가 일어나는 거리. 돈만 있으면 범죄자도 스타가 될 수 있는 시카고에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롭 마셜 감독의 영화 <시카고>는 1920년대 시카고의 어두운 시대상을 매혹적으로 풍자한다.

주인공 록시 하트는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스타가 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자동차 정비공의 아내일 뿐이다. 그는 무대 감독과의 연줄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하는 한 남자와 불륜을 행한다. 하지만 제안은 거짓이었고, 록시는 화가 나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으로 교도소에 갇히고 만다. 수감 생활 중 언론플레이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변호사 빌리 플린을 만난 록시는 그에게 자신의 변호를 맡아줄 것을 의뢰하고, 빌리는 록시의 아름다운 외모에서 스타성을 발견해 수락한다.

빌리의 지휘 아래, 재판장의 모두가 각본 안에서 움직인다. 록시는 빌리가 시키는 말만을 반복하고, 기자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 적어 1면 기사에 싣는다. 아름답고 가련한 록시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곧 그의 열광적인 팬이 되었다. ‘록시 스타일’이 유행해 그의 이름이 걸린 물건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정도였다. 영화는 록시가 복화술 인형이 되어 빌리의 무릎에 앉아있고, 꼭두각시 기자들이 록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재연하는 장면을 통해 재판을 묘사했다. 무대 바깥의 빌리는 마치 신처럼 위에서 모든 것을 조종한다.

록시는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된 후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할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행복해하지만, 이내 빌리의 시선은 더 자극적인 살인을 저지른 여성 살인자에게 옮겨간다. 대중의 무관심과 점점 미뤄지는 재판 날짜에 비참해진 록시는 이목을 끌기 위해 점점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가 갈구하는 대중의 사랑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다. 슬프게도, 아름다운 살인자 여성은 시카고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술과 재즈의 도시 시카고답게, 뮤지컬 넘버 모두 재즈로 구성되어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다른 뮤지컬 영화와 달리 등장인물들이 대사 중 노래를 시작하는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다. 마치 재즈 바에 온 것처럼 사회자가 가수와 노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등장인물들은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뮤지컬과 영화가 합쳐졌지만, 둘은 서로를 모르는 척하며 조화를 이룬다. 뮤지컬의 요소를 도입한 영화는 많지만, 시카고는 유일하게 ‘뮤지컬을 뛰어넘은 영화’라는 칭호를 얻으며 75대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

그들의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카고에는 진심으로 잘못을 반성하는 사람도, 범죄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다. 영화 초반부에 교도소장은 “이 곳에서 사형당한 여성은 없으니 걱정말라”며 록시를 위로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으로 사형당하는 여성은 교도소에서 유일하게 결백한 죄수였다. 헝가리 이주 노동자였던 그는 단지 영어로 변호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죽었다. 기자로도 활동했던 모린 달라스 왓킨스가 극작가이기에 영화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시대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풍자한다.

러닝타임 내내 자극적인 줄거리, 강렬한 음악과 춤에 매료되면서도 가슴 한편 씁쓸함을 놓을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시카고>가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원작이 1920년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제작되었음에도 사회가 그때와 비교해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자극적으로 부풀려진 범죄자의 서사들이 기사에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빌리가 만들어 놓은 무대의 관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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