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 '오래 준비해온 대답'

“젊다는 것은, 낯설고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익숙한 삶에 젖어 호기심을 잃고 늙어가는 자신을 자각한 이가 있다.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역동적인 삶을 되찾기 위해서 시칠리아로 떠난 작가의 기행문인 동시에, 저자가 살며 잃어왔던 것에 대한 기억을 담은 글이다.

서장에서 저자는 40세에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거머쥐었지만, 정체된 일상 속에서 창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자신의 삶을 조명한다. 내 안의 어린 예술가는 아직 무사한가? 의문에 사로잡힌 저자는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떠나기 전 현대인의 삶을 제자리에 묶어 두는 모든 것들 – 옷가지, 가구, 읽지 않는 책 등을 팔면서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자신의 삶에 들러붙어 있었는지 깨닫는다. 많은 사람이 구매하고 축적하는 삶을 살지만, 쌓여버린 물건들은 도리어 삶이 흘러가는 것을 방해하는 둑이 되어버린다.

시칠리아는 지금도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저자가 여행했을 당시에는 알려진 정보가 더 적어 이름조차 낯선 도시였다. 하지만 저자는 마법처럼 시칠리아에 끌렸다. 시칠리아는 테마파크와 같던 인기 관광지와 달리 느긋한 삶, 올리브 나무와 지중해, 파스타와 와인 등 저자가 상상해온 이탈리아의 풍경을 가감 없이 담고 있었다.

시칠리아가 생소한 도시였다는 감상이 무색할 정도로, 작가는 간결하지만 재미있는 문체로 풍부한 배경지식을 뽐내며 시칠리아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서술한다. 고대인들의 유희를 담은 원형극장 터, 지중해가 보이는 절벽에 지어진 신들을 기리는 신전들, 무뚝뚝하지만 느긋하고 따뜻한 시칠리아 사람들 등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직접 시칠리아에 가서 작가가 보고 들은 것을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저자의 다른 작품인 <여행의 이유>의 구절이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서 잃어버린 것들을 찾았을까. 아니면 잃어버린 것들을 뒤로하고 다시 삶으로 돌아갔을까. <여행의 이유>가 여행에 대한 생각과 관점을 소개하는 에세이였다면,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인생의 전환을 맞으면서 떠난 여행에 대한 기행문이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은 무엇을 잃고 있는지, 현재와 마주하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만드는 동시에 나에게 있어 시칠리아는 어디인지, 어디로 떠나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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