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정, 박규민, 박선우, 오성은 - '미니어처 하우스'

평상시엔 차갑기만 한 언니는 이상할 만큼 미니어처 하우스를 좋아한다. 커튼을 달고, 각양각색 옷을 만들어 손바닥 크기의 옷장에 정리한다. 한집에 살지만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던 언니가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미니어처 하우스만을 남긴 채 떠난 언니를 이해해보려, 작은 가구 속 언니의 기억을 짚어 나간다.

인류에게는 국적, 성별, 나이 등 개개인을 구별하는 선이 존재해왔다. 선을 기준으로 한 안과 밖의 구분은 종종 차별과 혐오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선을 넘는 행위는 금기시되었다. 너무도 좁아진 허용의 반영에 의문을 품은 네 소설가가 ‘인사이드-아웃사이드’를 주제로 한 네 편의 단편소설과 네 편의 수필을 담은 소설집 <미니어처 하우스>를 출간했다.

네 편의 소설은 ‘정상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이 서로를 온전한 주체로 마주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김아정 작가의 <미니어처 하우스>는 너무 늦게 언니를 이해해버린 화자의 성장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중계한다. 박규민 작가는 <어쩌다가 부조리극>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위해 남매가 연 마지막 파티를 조명한다. 할머니의 마지막 기억을 재연한 잔잔한 파티에서, 세 사람의 관계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기만 하다. 박선우 작가의 <빛과 물방울의 색>은 화자에게 물방울처럼 나타난 옛 연인의 유령이 고하는 작별 인사를 담고 있다. 이별, 아웃팅 등 지난날의 굴곡을 건조하게 회상하는 화자의 방은 작아 보이기만 하다. 창고가 되겠다고 선언한 뒤 사라진 아내의 자취를 쫓는 화자의 여정을 다룬 오성은 작가의 <창고와 라디오>는 과거와 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 아련한 후회를 담아냈다.

박선우 작가는 여는 글에서 ‘살아간다는 건 이쪽과 저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안과 밖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매번 뒤늦게 깨닫는 과정’이라며 책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경계 간의 전쟁에서 문학의 역할이 ‘당신과 나의 구분을 지우는 일, 저 너머의 생을 이편으로 불러들이는 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타자와 조우하려는 노력’이라 덧붙였다.

굳게 닫힌 문이 가로막고 있는 한, 벽 너머에 있는 사람을 온전히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오랜 시간 잠겨 있었기에 살짝 밀어 봐도 꿈쩍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 명의 작가가 던지는 “선 안에서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은 문득 바깥에 있는 사람은 나만큼 안녕하지 못한지 살펴보게 한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칭칭 감은 선을 거두는 순간, 우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진다. 문을 열고 밖에 있는 타인을 들여다보며, 어느새 나는 나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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