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 시대와 저널리즘
상태바
탈진실 시대와 저널리즘
  • 변성운 기자
  • 승인 2020.03.31 22: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경리의 소설 불신시대는 금전적 가치가 사람의 양심을 잠식하여 사회를 이루고 살지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을 그린다. 이웃을, 의사를, 종교인을, 그 외 어떤 타인도 믿을 수 없는 사회는 소설을 통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다.

최근 들어 끊임없이 신뢰성이 추락하고 있는 사회의 한 분야가 있다. 바로 언론이다. 언론은 원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기에, 이 분야의 타락은 사회 불안을 가중한다.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와중에 가짜 자료와 진짜 자료의 구분이 모호한 채 서로 모순되는 주장이 난립하는 현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는 불신시대의 서막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학자가 현재를 탈진실(post-truth) 시대로 정의한다. 탈진실 시대는 2016년 옥스퍼드 사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용어로,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신념과 감정적 호소가 여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일컫는다. 대중은 이제 진실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이해에 부합하는 왜곡된 보도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언론도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편향적인 자료나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한다.

서로의 진영 논리와 이해를 고려하여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작성하는 현 상황에서, 언론은 더 이상 전문적으로 사실에 입각한 글을 작성하는 시대의 양심이 아니라 가십과 만족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으로 전락하였다. 이는 곧 언론인의 권위의 추락을 의미한다. 한때 전문적인 기자의 영역이었던 보도와 논평은 이제 전문성을 알 길 없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SNS 언론에도 열렸다. 이러한 흐름에 대항하여 가짜 뉴스의 진실성을 파헤치는 팩트체크 뉴스도 덩달아 생겨났지만, 가짜 뉴스의 제작보다 가짜 뉴스의 해명이 훨씬 어려운 작업이기에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또한, 대중의 입장에선 팩트체크 프로그램도 타 진영에서 주장하는 하나의 뉴스일 뿐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겸 저널리스트 에밀 졸라는 유대인에게 적대적이었던 당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유대인 드레퓌스의 무죄와 프랑스 법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게시하였다. 그 결과 졸라는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었지만, 그는 끝까지 펜을 꺾지 않았다. 현 세태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언론의 양심과 낭만을 기대할 수 있는가? 대중에 대해 언론인의 권위를 유지해주었던 것은 졸라와 같은 몇몇 양심적인 언론인의 자취와 그들이 지켜내고자 하였던 저널리즘이란 무형의 가치였다.

포퓰리즘은 전문성과 거리가 멀며, 정치적 쟁점 분야에 대한 지식도 희박한 대중이 정치적 권위에 기생하고자 하는 욕망을 반영한다. 정치적 문제는 전혀 대중이 몇 분       만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음에도, 언론은 쟁점을 흑백논리와 과장된 자료로 단면화하여 대중에게 보여준다. 반대되는 진영은 이 과정에서 악의 무리가 되며, 옹호되는 진영과 대중은 이 과정에서 정치적 탄압에 시달리는 희생양이면서 부당함과 싸우는 투사가 된다. 훌륭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망상을 하는 동안, 대중의 주권은 또 하나의 권력자가 된 언론사의 속삭임에 이끌려 정보의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