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로트렉 展', 붉게 빛나는 몽마르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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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 展', 붉게 빛나는 몽마르트의 밤
  • 하예림 기자
  • 승인 2020.03.17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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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심취해 전율하는 가수, 더위에 땀을 흘리며 춤을 추는 무용수들, 호탕하게 웃으며 술잔을 부딪치는 사람들까지. 붉게 빛나는 파리의 밤은 눈부시다. 취기 어린 목소리로 신세를 한탄하는 이들 사이로 약 137cm의 작은 남자가 눈에 띈다. 그의 연필이 움직일 때마다 종이 위엔 무도장의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선보이는 로트렉의 첫 단독 전으로, 2007년부터 그리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지를 순회한 국제 전시의 연장이다. 특히 그리스 아테네의 헤라클레이돈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5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될 뿐 아니라 로트렉의 생애를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벨 에포크의 별이 되다

열정적인 무곡에 이끌려 전시장에 들어서면 파리의 밤을 상징하는 무도장 물랭 루주(Moulin Rouge)가 관객을 맞이한다. 1871년 보불전쟁(Franco-Preussen War)이 끝나자 프랑스에는 평화와 풍요가 찾아왔다. 에펠탑이 세워지고, 파리 지하철이 개통되는 등 산업과 예술이 번창하며 프랑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로 불리는 ‘벨 에포크(Belle Epoque)’가 열렸다. 벨 에포크는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고흐 등 유럽 각국의 화가들이 파리에 모여 다양한 미술 사조를 꽃피운 시기로도 알려져 있다. 로트렉은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아카데미 파 화가인 레옹 보나의 사사를 받았지만, 그는 화실에서 만난 빈센트 반 고흐나 에드가 드가의 작품 세계를 동경했다.

1884년, 로트렉은 몽마르트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몽마르트는 1880년경에 이르러 자유분방한 예술을 추구하는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및 실험적인 예술을 지향하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1889년 몽마르트는 물랭 루주가 개관해 유명 인사들이 드나드는 최고의 사교장이 되었으며, 로트렉에게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었다. 그는 사람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는 눈과 빠른 손놀림으로 물랭 루주에서 춤추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등 물랭 루주의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전시는 로트렉을 유명 인사로 만들어 준 작품 <물랭 루주, 라 굴뤼(Moulin Rouge, La Goulue)>를 포함해 그가 매일 밤 그림으로 기록했던 물랭 루주의 모습을 관객에게 소개한다. 대담한 표현과 기법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포스터와 판화에 석판화 기법을 이용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로트렉은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Herakleidon Museum, Greece
©Herakleidon Museum, Greece

연필이 선물한 자유

열기로 가득한 무대를 벗어난 관객의 앞에 사람들의 익살스럽고 노골적인 순간이 포착되어 있다. 어린 시절 다리가 부러져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연필은 로트렉의 친구였으며, 미술 교육을 받는 동안 세상을 보고 그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로트렉은 소묘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유화와 판화를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1899년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던 중 로트렉의 그림을 본 의료진은 놀라운 묘사 실력에 그가 회복 중이라 판단해 퇴원시켰는데, 이를 재미있게 생각한 그는 사람들에게 “소묘로 자유를 샀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곳에서는 로트렉이 17살 때 아버지를 그린 <알퐁스 드 툴루즈 로트렉(Alphonse de Toulouse-Lautrec)>, 자신의 누드를 재치있게 표현한 <툴루즈 로트렉 누드(Toulouse-Lautrec Nu)> 등 현대적이고 절묘한 소묘를 만날 수 있다. 

 

포스터에 예술을 불어넣다

세세하고 정확한 소묘에서 눈을 떼면 로트렉이 생전 남긴 31점의 포스터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예술가들은 급진적인 변혁을 가져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이전까지 예술가의 일이 귀족이나 부유층을 위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후부터는 진부한 작업 방식을 버리고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되었다. 예술 작품들은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시장에서 거래되었으며, 석판화나 사진 등 대량으로 예술품을 제작하는 방식이 개발되었다. 툴루즈 로트렉은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포스터 예술 분야를 선도했다. 그는 잘 알려진 이들을 작품의 소재로 할 뿐 아니라 무도장과 카페, 극장 등 번창하는 파리의 활기찬 매력을 포스터에 담아냈다. 또 대각선 구도, 배경 생략, 선명한 색채와 굵고 진한 선 등을 활용해 기존의 회화 기법을 뛰어넘는 추상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로트렉은 37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생애 동안 많은 양의 작품을 남겼다. 어릴 적 함께 지냈던 말의 그림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은 주로 주변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카바레의 무용수와 가수, 서커스 단원의 인간적인 비애를 가감 없이 표현했는데, 이는 그가 세상의 애수에 공감하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의 웃는 얼굴 뒤 억눌린 열정과 외로움을 이해하는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흥겹고 명쾌하며 정직했다. 몽마르트의 한 예술가처럼.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기간 | 2020.1.14.~ 2020.5.3.

요금 | 15,000원

시간 | 10:00 ~ 19:00

문의 | 02)543-7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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