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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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상실의 시대
  • 허성범 기자
  • 승인 2020.03.17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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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전파는 인간을 사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많은 이들이 원치 않은 채로 멈춰 서게 되었다. 늘 흙먼지가 인 운동장처럼 흐릿하기만 했던 세상 속에서 모두가 느려지고, 멈춰서고 보니 그제야 주변 일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알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정치란, 일상에 돌을 던지기엔 너무 느리고 무의식에 기반한 바닥 같은 것이기 때문에. 현 시스템 아래에서 “난 정치 잘 몰라”라는 말이 관용어구로 사용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이데거는, 니체는, 플라톤은 오늘날과 같은 미래를 필연적으로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바이러스는 천천히 먼지와 함께 가라앉아 바닥을 잠식했고, 원래 금이 가 있거나 부서져 내린 부분들을 먼저 파고들었다. 일상이 깨어질 정도로 기반이 흔들리자,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균열을 언급했다.

정치인들은 모든 사회현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본래 소명인 신념과 인애는 이미 먼지와 함께 바람에 쓸려 떠나버리고, 색깔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민주화와 새마을의 망령들이 있었다. 아이돌 팬덤을 방불케 하는 맹목 속에서 이미 결론은 정해두고 현세를 비난하는 그들에게 정치란 무의미한 것이다.

간악한 이들은 수많은 일상이 희생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이익에만 혈안이었다. 각종 가짜 정보가 무고한 이들을 파괴했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쏟아내며 인기를 얻기 위해 존엄을 포기한 자들도 있었다. SNS의 확산으로 모두가 유사언론의 파급력을 지니게 되었지만 ‘저널리즘’ 의 부재는 또 다른 피해자들을 양산할 뿐이었다.

공포의 파랑은 인간을 세차게 흔들어 놓는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주관을 가지려 한들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미적분이나 강요할 줄 알았지 그러한 방법을 알려 준 적이 없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위기는 실제를 비추는 좋은 거울이 된다.

더 이상 ‘인간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부끄럽다. 인간이란 원래 어떤 존재였는가 하며, 우리 모두가 같은 지적 인격체라는 것이 놀랍다. 온 세계가 예외 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원래 인간이란 이러했겠거니와 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소설가 공 씨의 말처럼, 반복되는 상실 속에서 우리 인간은 이렇게 명멸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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