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유경 시나리오 작가

 

정현석의 <먹다>는 신체와 음식에 관한 집착이라는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양한 이미지로 드러내며 주인공의 감정을 ‘장면화’ 하는 데 성공한다. 마트의 ‘피 튀기듯 쥐어짜지는 생고기’에서부터 구내식당의 ‘물건처럼 쏟아지는 음식’의 이미지와 같이, 주인공이 마주치는 일련의 순간에 카메라 앵글을 밀착하여 들이대는 클로즈업 시점의 장면들은 보여주기를 통한 심리적인 묘사가 탁월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영역에 닿을 수 있게 한다. 

주인공의 강박을 형상화 한 그로테스크한 톤 앤 매너는 이야기 전체에 독특한 기류를 형성하며 뒤로 나아가는 흡인력을 갖는다. 클라이맥스에서 초파리가 날아다니고 죽은 물고기가 둥둥 떠다니는 공간 속, 황폐해진 주인공을 극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살이 전부 도려 져 하얗게 드러난 갈비뼈’나 ‘꿈틀거리는 내장’과 같은 표현은 거세지는 폭풍처럼 점진적인 상승 곡선의 꼭지 점을 찍으며, 한 인간의 일그러져 가는 감정에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구조의 틀을 덧입혀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선이 하나의 서사를 갖추며 완결된 기승전결을 형성하기에는 그 마무리가 급작스러운 아쉬움이 있다. 결말로 가며 충분한 연결고리로 엮지 못한 채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나열된 병원 장면들, 앞에서 뿌린 이야기의 씨앗이 싹을 틔울 새도 없이 툭, 등장하는 사과나무로 끝맺는 엔딩은 설익은 마침표로 보인다. 

인물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성격과 욕망을 지닌 세 조연들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배치된 점은 적절했으나, 하나의 연결성을 지니지 못하고 겉 돌며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내는 편집이 필요하다. 대사의 경우에도 자연스러운 장점이 있는 반면, 일상의 대화를 그대로 풀어놓은 듯 길고 설명적인 경향이 있어 전반적으로 압축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신화’ 교양강의, 야생동물과 식물을 보여주는 자연다큐멘터리, 개인방송의 먹방 콘텐츠 역시 주제의식을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하나의 단편영화 시나리오에서 한꺼번에 기능하기에는 과하게 도드라진다. 

이미지를 맹렬하게 밀어붙이는 동력이 충분하고, 일상을 비일상적이고 독특하게 그려내는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를 함축하며 전체를 관통하는 마침표를 찍기 위한 고민을 지속한다면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하나의 거대한 세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빛나기에,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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