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올해도 많은 학생들이 KAIST 문학상 시 부문에 작품을 투고해 주었다. 투고된 작품은 모두 162편이었는데, 대부분 자신의 경험과 상념을 진솔한 언어로 잘 표현한 작품이어서, 다소 서툴더라도, 기성 시인의 작품에서는 읽어내기 어려운 젊은 세대의 고뇌와 꿈을 읽을 수 있어, 작품을 읽는 내도록 즐겁고 행복했다. 투고된 작품 대부분은 그 나름의 미덕을 지니고 있어 수상작은 물론 후보작을 추려내기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고심 끝에, 작품에서 형상화된 시적 상황과 세계에 대한 인식이 참신하며 독창적인지, 작품에 드러난 인식과 정서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지 등의 기준을 세우고, 구인용의 <삶>, 유슬기의 <문제 해결>, 최지만의 <꽃샘추위>, 이예림의 <빨래를 하다가> 등 네 작품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구인용의 <삶>은 고단한 삶의 과정을 병마와 싸우는 과정에 비유하여 시상을 전개한 작품으로,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시적 화자의 의지가 돋보였다. 강렬한 언어로 비극적 상황을 표현한 점은 기성 시인의 작품과 비교해서도 손색이 없는 완결성을 보였다. 이렇듯 작품 자체는 당선작으로 선정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구인용은 지난해 시 부문에 당선된 바 있어, 심사 관례에 따라 수상 대상에서 배제하였다. 

유슬기의 <문제 해결>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면 눈을 감지 말고 떠야 먼지가 빠진다는 사실을 통해, 시련이 찾아왔을 때, 외면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야 함을 군더더기 없이 짧고 간결한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다. 재치있는 작품이지만, 단 하나의 인식만 담은 소품이라는 한계 때문에 아쉽게도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최지민의 <꽃샘추위>는 꽃샘추위는 꽃을 시샘하는 것이 아니라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초봄까지 꽃 주위에서 머뭇거리는 것이라는 신선하고 독창적인 인식을 따뜻한 언어로 표현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자연과 세계에 대한 섬세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돋보였고,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언어도 시에 나타난 긍정적 세계 인식과 잘 어울렸다. 

이예림의 <빨래를 하다가>는 빨래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 과정에서 떠오르는 다양한 질문과 상념을 산만한 듯 통일된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이다. 세탁기에 빨래를 분리해서 넣고, 세탁기를 돌린 후, 종료를 알리는 멜로디가 들릴 때까지의 과정과 그때마다 떠오르는 냉소적이고 아이러니한 상념이 건조한 언어로 툭툭 내던지듯 표현되는데, 이를 통해 시적 자아의 고독하면서 메마른 정서가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빨래와의 교감, 자아의 분신으로서 빨래 등 독창적인 인식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두 작품 모두 수상작으로 선정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작품이지만, <꽃샘추위>가 다소 평면적인 인식을 표현한 데 반해, <빨래를 하다가>는 복잡하고 모순된 인생의 여러 국면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꽃샘추위>를 가작, <빨래를 하다가>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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