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하다가>

 

경영공학부 석사과정 19

이예림

 

빨래 바구니를 꺼낸다 오래 묵어 어딘가 축축히 눌어붙은 빨래들을 빨래망에 넣는다 흰 건 흰 것끼리 검은 건 검은 것 끼리 색깔 옷을 집어 들고 고민에 빠진다 아이보리는 흰 쪽 회색은 검은 쪽 갈색은 어느 쪽? 빨래망에 너무 가득 집어넣은 양말들에 약간의 미안함을 느낀다 나와 가장 맞닿은 이들인데 세상에 발자국 흔적 남기는 것 신발에게 양보하고도 눅눅히 엉겨 붙어 젖어 들어야 하는 이들

이젠 수건의 차례 그들에겐 저마다 이름이 있다 희미하게나마 존재하게 된 이유 아직 남아있다 그 기념의 날이 오늘은 비록 환영일지라도 수건으로 슥 닦으면 몸은 어디까지 닦이는 것일까 내 죽은 각질까지 그네들이 가져간다면 내 몸 일부 떼어준 건가 잠깐 내 피부였던 껍데기 묻히고 베란다 바구니 속에서 나를 기억하고 있었나 하면 조금은 고독해 진다

물이 닿아 스르르 진해진다 왜 젖으면 진해지는가 옷이 진해진다 머리카락이 진해진다 나무가 진해진다 눈동자가 진해진다 문득 얼굴도 진해지나 궁금해 거울을 닦아봐도 뿌연 건 수증기때문인가 진해진 눈동자 때문인가 완성품을 생각하지 않고 시작한 뜨개질처럼 끝없이 늘어지는 잡념 빨래라는 이름은 누가 만들었나 빨래를 빨다 라는 말은 비문인가 빨래를 한다 와 옷을 빤다 의 빨래와 옷은 무엇이 다른가 벗은 옷을 바구니에 넣는 순간 달라지는 정체 빨래는 억울하다

느닷없이 연주되는 다장조의 멜로디 이제 문을 열어야 한다 깊이 맺힌 물방울 모두 떨궈야 한다 그저 잠깐 누우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된다 젖은 옷을 입는 사람은 없다
널어놓은 방 유리창이 습기가 차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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