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액세스, 지식의 장벽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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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액세스, 지식의 장벽을 허물다
  • 박종건, 정수헌 기자
  • 승인 2020.02.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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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바이러스 염기서열 정보는 진단검사법을 설계 및 평가하고,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그 때문에 현재 각국에서 분리한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정보는 세계보건기구의 GISAID(Global Initiative on Sharing All Influenza Data)에 등록되고 있으며 국내외 연구자들의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공유의 가치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지만, 현재의 학술정보 시스템에는 미흡한 부분이 존재한다. 본 기사에서는 현재 학술정보 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오픈 액세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상업 DB의 지식 독점과 논문 저작권

대학도서관의 자료 구매 비용 중 학술 문헌의 구매 비용은 약 73% 정도이다. 학술자료 구매 비용 중 전자 저널로 지출되는 금액의 대부분은 상업 DB(Database)인 ScienceDirect 및 Wiley 구독 비용으로 2015년 기준 약 63%를 차지하고 있다. 반드시 인용하거나 참고해야 하는 학술 정보가 대체로 고가의 전자 저널에 실려 있는 경우가 많아 연구소를 비롯한 대학들은 비싼 금액을 지불하더라도 연구자들의 연구 수행을 위해 구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학술 정보에 대한 상업 DB의 독점적인 유통 구조가 가능한 것은 학술지를 발간하는 학회가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처음으로 논문을 작성하면 연구자 본인에게 저작권이 발생한다. 그러나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원고를 학술지에 투고할 때 학회에 저작권을 양도하는데 동의한다는 계약서를 함께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학회는 연구자가 보유한 지식재산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양도받아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심사를 거쳐 논문을 출판하고, 연구자는 학술 저널을 통해서 정당하게 평가받는 논문을 발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연구자가 양도한 ‘저작권’은 무엇일까? 저작권은 크게 인격권과 재산권으로 구성된다. 저작인격권은 창작자만 가질 수 있으며, 양도하거나 상속할 수 없는 권리이다. 그 때문에 앞서 말한 계약을 통해 학회에 양도되는 권리는 저작재산권이다. 저작재산권은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공연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저작물작성권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학회는 학술지를 출판하고 인터넷에 서비스하기 위해 주로 복제권, 공중송신권, 배포권,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양도받고, 때때로 저작재산권 전부를 양도받는다. 이렇게 학회는 양도받은 권리를 통해 학술지를 출판한 뒤, 상업 DB와 계약을 통해 구독료의 20% 정도를 나눠 받는다. 이 수익구조에서 저작권을 양도한 논문 저자들은 배제되어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속한 연구 집단이 해당 상업 DB를 구독하지 않았다면 상업 DB를 통해 자신의 논문을 열람할 수도 없다. 상업 DB의 구독 여부는 학술 정보의 접근성 차이를 유발하고, 이러한 연구 환경 격차는 연구자의 연구 기회를 제한한다. 일반 대중도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양질의 학술 지식을 접할 수 없는 것이 현재 학술정보 시스템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대안이 바로 ‘오픈 액세스’이다.

 

인터넷과 함께 발달한 오픈 액세스

1969년 개발된 아파넷(ARPA-NET)은 인터넷의 원조로 불리며, 당시 대학 및 기업 등에 소속된 미국 전역의 컴퓨터들을 이어주었다. 각 대학과 기업의 연구자들은 아파넷을 통해 연구 자료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오픈 액세스 운동(Open Access Movement)은 출판물을 혁신적으로 쉽게 복제, 열람할 수 있는 인터넷의 등장에 힘입어 활발해졌다. 1971년 누구나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전자책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가 등장하고, 1987년 최초의 무료 온라인 학술지인 <New Horizons in Adult Education>이 창간되는 등 인터넷의 등장 초기부터 오픈 액세스 운동은 큰 변화를 겪었다.

1991년 월드 와이드 웹(WWW)이 탄생하고 PC가 보급되며 오픈 액세스 운동은 점점 광범위하면서도 체계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1991년 물리학자 폴 긴스퍼그가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시작한 arXiv는 최초의 학술 온라인 아카이브로, 다수의 물리학자가 출판 전 논문(Preprint)을 셀프 아카이빙(Self Archiving)하며 오픈 액세스 운동의 성공적인 사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덕택에 arXiv는 수학, 물리, 컴퓨터 과학, 통계 등 여러 분야의 학술 논문을 공개하는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98년 미국 연구도서관협회(ARL)의 주도로 설립된 SPARC는 학술지 구독으로 인한 각 기관의 가격 부담을 해소해 학술 문헌의 유통을 증진하기 위한 단체로, 오픈 액세스를 위한 새로운 학술 문헌의 유통 모델을 제시하는 등 여러 정책에 기여했다. 2001년 설립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는 일정한 조건하에 창작물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이용을 허락하는 라이선스인 CCL(Creative Commons License)을 만들었고, 이는 오픈 액세스에 대한 제도적 장비를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오픈 액세스의 개념은 2002년의 ‘부다페스트 오픈 액세스 구상’, 2003년의 ‘오픈 액세스 출판을 위한 베데스다 선언’과 ‘과학 및 인문학 지식의 오픈 액세스에 관한 베를린 선언’으로 이어지는 세 번의 성명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오픈 액세스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OA2020은 2015년에 열린 제12차 베를린 오픈 액세스 콘퍼런스에서 수립되었으며, 기존 학술지의 구독료를 오픈 액세스 저널에 필요한 기금으로 환원하는 등의 노력으로 과학 분야의 학술지를 오픈 액세스로 전환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 2018년 9월 유럽연구위원회와 유럽연합위원회는 올해까지 정부의 지원으로 수행된 연구의 논문을 오픈 액세스로 전환해 무료로 제공한다는 강력한 정책인 Plan S를 발표했다.

 

저자들의 자발적 참여로 실현 가능해

오픈 액세스의 활성화를 위해 2002년 부다페스트에서 발표된 ‘부다페스트 오픈 액세스 구상’은 오픈 액세스를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해 오래된 전통과 새로운 기술이 합쳐진 것’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오래된 전통’은 ‘학자들이 연구 성과를 무료로 학술지에 공개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새로운 기술’은 인터넷이다. 이러한 오픈 액세스의 정의는 논문 등의 학술 문헌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학술 문헌은 저자의 이윤 창출보다는 그 파급에 더 큰 초점이 맞춰져 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술지 또한 관행적으로 저자에게 별도의 이윤을 분배하지 않는 형태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학술 문헌은 오픈 액세스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기 좋은 대상이 되었다. 이는 현재에도 많은 오픈 액세스 운동이 학술 문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픈 액세스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골드 OA(Gold Open Access)는 학술지에 출판되는 모든 논문이 오픈 액세스로 공개되는 경우를, 그린 OA(Green Open Access)는 비용을 지불해야 열람할 수 있는 학술지에 투고된 논문을 저자가 직접 오픈 액세스 저장소에 게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또한, 출판물에 대한 비용 장벽만을 제거한 오픈 액세스를 무상 OA(Gratis Open Access), 저작권상의 제약 등 추가적인 장벽을 제거한 오픈 액세스를 자유 OA(Libre Open Access)라 한다. 부다페스트 오픈 액세스 구상은 이러한 오픈 액세스를 실현하기 위해 ‘셀프 아카이빙’과 ‘오픈 액세스 저널(Open Access Journal)’의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셀프 아카이빙은 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논문을 전자 아카이브에 게재하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오픈 액세스 저널은 비용 장벽과 저작권 문제 등에 구애되지 않은 채 학술논문을 제공하는 학술지를 뜻한다. 이 방안이 충실하게 지켜지면 학자들은 법적, 제도적 변화를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오픈 액세스를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 있다. 오픈 액세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술 문헌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피어 리뷰(Peer Review)’를 거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존과 같이 피어 리뷰를 거친 출판물을 생산하려면 투고 및 심사 관리, 교정, 편집 등을 위한 비용이 필요하고,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오픈 액세스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대학 및 도서관, 그리고 연구 결과를 널리 공유하려는 연구 기금 등의 지원 아래 새로운 방식의 출판 모델이 요구된다. 이러한 변화가 선행되지 않은 오픈 액세스는 자칫 금전적 이익만을 취하려는 집단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

 

‘약탈적 출판’의 먹이 된 오픈 액세스

약탈적 출판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도서관 사서인 제프리 빌이 제안한 개념이다. 그는 과학적 검증 절차인 피어 리뷰를 거치지 않고, 논문 투고료 등 금전적 이익을 노리기 위해 저널을 출판하는 약탈적 학술지들의 목록을 공개했다. 그가 지적한 학계에서 이뤄지는 상호인용과 미흡한 검증을 통해 게재되는 논문의 문제점은 약탈적 출판에 대한 공론화로 이어졌다.

2013년 10월 사이언스(Science)에 ‘누가 피어 리뷰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이름의 흥미로운 기사가 게재됐다. 존 보너헌 기자는 이끼에서 추출한 화학 물질의 항암 특성에 관한 가짜 논문을 만들어 304개의 오픈 액세스 학술지에 투고했다. 놀랍게도 답변이 온 255개의 학술지 중 절반 이상이 논문의 단순한 결함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출판을 승인했으며, 동료 연구자들에 의해 논문을 검증하는 피어 리뷰를 실행한 학술지는 약 40% 정도에 불과했다. 비록 이 실험에는 구독 기반의 전통적인 학술지를 포함한 대조군이 없으므로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오픈 액세스 학술지 중 약탈적 학술지가 많이 포진하여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최근 약탈적 오픈 액세스 학술지는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오픈 액세스 학술지는 전통적인 학술지에 비해 빠르게 발간되며, 구독료 없이 투고료에만 의존하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약탈적 출판의 도구가 되기 쉬우며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오픈 액세스 학술출판사 협회(OASPA)는 회원 심사에서 학술 출판의 투명성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연구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픈 액세스 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이 논문을 출판할 학술지가 약탈적 학술지가 아닌지 우선 경계해야 한다. 오픈 액세스의 맹점을 악용하는 이러한 부정행위가 근절될 때 오픈 액세스는 비로소 그 순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협업하여 오픈 액세스 실현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고, 이를 2014년 국립중앙도서관이 이관받아 현재에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작년 11월에는 국회에서 ‘학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 학술지 오픈 액세스 전환 정책토론회’가 열리는 등 오픈 액세스가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관심이 실제로 오픈 액세스의 확산으로 이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직 국내 오픈 액세스 학술지에 대한 통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있지 않은 등 오픈 액세스에 대한 확실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오픈 액세스에 대한 학계의 진지한 담론이 형성되어 더욱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학술 출판 제도가 자리 잡기를 소망해본다.

 

참고문헌 |

Peter Suber. (2012). Open Access. Cambridge, Massachusetts: MIT Press.

윤희윤, 김신영 (2007). 국내외 문헌정보학 학술지의 오픈 액세스 동향 분석.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38(1), 27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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