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로 가리워진 나의 어린 시절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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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로 가리워진 나의 어린 시절 추억
  • 심주연 취재부 기자
  • 승인 2019.11.0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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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험은 열흘이 채 남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화창한 날씨를 뒤로하고 의자에 앉아 종이에 수학 공식을 적는 것뿐이었다. 중간중간 친구들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유일한 일탈이었다. 그러다 인기 급상승 검색어 순위가 나열된 페이지에 들어갔다. 평소에는 보지 않던 인기 급상승 검색어가 그날따라 보고 싶었던 까닭은 단지 공부가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상하리만큼 검색어 순위가 특정 연예인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연예인은 어느 순간부터 항상 모든 행동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1위부터 10위까지 모든 검색어에 이름이 포함된 것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클릭하자마자 떠오르는 단어 ‘자살’, 그리고 그 이유는 ‘악플’. 정말 충격적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도 핑 돌았다. 

나는 초등학생 때 아이돌을 정말 좋아했다. 3사 방송국에서 하는 모든 음악 프로그램을 매주 챙겨볼 만큼 애정이 깊었다. 그 연예인이 속했던 그룹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 그룹의 노래를 작은 MP3 플레이어에 담아 친구들과 춤추고 흥얼거린 것은 특별히 좋아하는 기억 중 하나다. 

나의 추억 일부를 쥐고 있던 그녀가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더는 그녀와 관련된 새로운 영상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마치 어린 시절 일부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가 많을까. 그리고 이 화를 왜 익명 뒤에 숨어 인터넷상에 표출하는 것일까. 악플러들은 유명인을 조롱하며 내면의 화를 드러낸다. 내가 생각하기에 악플러들이 이런 방식으로 화를 표현하는 이유는 2가지다. 

첫째, 그들의 비난의 대상을 모두가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비방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일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집단의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된다. 둘째, 유명인은 대중에게 특별한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가수는 남들보다 뛰어난 가창력, 모델은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과시한다. 이런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유명인의 결점이나 실수에 더 관심을 가진다. 마치 그 사람 또한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싶단 듯이 물어뜯고 상처를 준다. 

나는 상대의 부족한 면을 가십으로 소비하는 행동이 싫다. 걱정을 빙자하며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 행동도 싫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는 악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핑계를 대며 정당화한다. 정당화하면서까지 악담을 해서 사람들이 얻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난 비록 논란의 중심 속에서 상처받았던 그녀를 등지고 아무런 응원의 말도 해주지 못했지만,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예인 관련 기사에 댓글을 썼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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