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가 카이스트에 적응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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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가 카이스트에 적응하기까지
  • 박혜진 학우 (새내기과정학부 19)
  • 승인 2019.11.04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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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시간이 훌쩍 지나서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됐다. 나도 점점 이 학교의 일원으로 적응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카이스트는 꿈같은 학교였다. 공부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일반고를 나온 탓에 똑똑한 사람들의 모임에 대한 동경이 컸던 나에게 창글리에서 처음 본 카이스트는 낭만 그 자체였다. 그때는 카이스트를 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의욕적이고 학구적이며 완벽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게 대부분의 카이스트 외부의 사람들이 보는 카이스트이다.

나는 공부를 하다가 잠이 와도 카이스트를 갈 생각만 하면 너무 설레서 잠이 안 올 정도로 이 학교를 기대했고 기다렸다. 그리고 열심히 한 끝에 학교에 입학했다.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학구적인 분위기에 노력형인 내가 들어가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몇 년은 뒤처진 수준을 따라잡으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입학하니 환상은 깨지고 목표는 희미해졌다. 정신없이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며 친구를 사귀었다. ‘새내기니까’로 나태해진 자신을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아무런 위기감도 없이 중간고사를 쳤다. 중간고사 점수를 받았을 때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공부를 애초에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계속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이럴 거면 왜 왔지? 밤이 되면 친구들과 재밌게 놀면서도 ‘나는 왜 여기에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공부를 잘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는 학교에 나는 불청객이 된 느낌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무능력하다고 평가할까 봐 무서웠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자기는 점수를 잘 받는 공부는 잘하는데 공부를 잘 못 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정말 큰 충격이었다. 애초에 ‘공부를 잘한다.’라는 말의 정의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점수가 잘 나오지는 못해도 궁금한 것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시험을 못 치고 학점을 못 받았다고 해서 내가 멍청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부터 나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바뀌었다. 목표도 되찾았다. 나는 공부를 못해서 이 학교에서 버틸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생각했던 공부는 단지 성적을 잘 받는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능력들을 이 학교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자 학교와 수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자소서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던 내 모습과 비슷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처음부터 천재가 되어보려고 이 학교에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요즘은 카이스트가 아닌 다른 학교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카이스트의 일원으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사람도 또 앞으로 이 학교를 올 사람 중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점수 몇 점보다 더 큰 숲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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