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시계 코너에서 명품시계를 유심하게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시계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유심하게 봤다면, 그 시계들의 가격을 보고 기겁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목에서 시간만을 알려주는 기계장치가 적게는 십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이 넘어가는 것들도 있으니, 또한 그들 중에는 귀금속을 쓰지 않고, 스틸만을 이용한 모델도 있다고 하니 가히 손목 위의 중고차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어찌 되었건 일반인의 입장에서 확실히 비싼 물건임에는 분명하다. 혹자는 말한다, 이렇게 값비싼 시계는 얼마나 시간을 정확하게 나타내는지 의문이라고. 필자는 이 자리에서, 왜 시계가 그렇게 단순한 기능을 가짐에도 값비싸게 팔리는지에 대해서 내 의견을 조금 말해보고자 한다.

과거의 손목시계는 가히 인간 기계공학의 결정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걸작이었다. 인간은 문명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연구했으며, 물시계나 해시계 같은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을 여럿 생각해내었다. 다만, 이들은 모두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초로 고안한, 태엽과 톱니바퀴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였던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에 당해낼 수 없었다. 당시 기계식 시계는 물시계 따위와는 다르게, 매우 절제되고 정교한 움직임으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으며, 이들을 50mm 남짓한 크기로 만드는 것은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대 공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실제로 과거에는 보편적인 시간측정기기로서 현재의 명품시계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영국 잠수부에게 R 사의 다이버 시계가 기본으로 지급되었으며, 1969년 닐 암스트롱은 O 사의 시계를 손목에 걸고 달에 발자국을 새겼다. 가격이 지금에 비해 쌌다. 더불어, 당시에는 기계식 시계가 시간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실용적이기까지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보편적이면서 실용적인 휴대용 시간 측정 장치로서의 절대자, 기계식 시계에도 위기가 찾아오는데, 뜻밖에 절대자로의 도전자는, 시계 산업의 심장인 스위스가 아니라 지구 반대편 일본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SEIKO 사는 1969년 크리스마스에, 기존 기계식시계보다 월등히 오차가 적고 값이 저렴한, ‘쿼츠 시계’를 공개했다. SEIKO가 만들어 낸 쿼츠 시계는 기존까지의 스위스 시계를 기술력에서 크게 앞서면서, 일명 쿼츠 파동이라는, 기계식 스위스 시계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스위스 시계 기업들은, 초기에는 유행에 편승하기도 했지만, 기계식 시계를 일종의 예술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역사를 강조하고, 시계의 만듦새를 더 멋들어지게 하고, 브랜드의 고급화를 추구했다. 

스위스 시계의 고급화는 21세기 시점에서 볼 때, 시장을 매우 잘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COSC등급을 받은 T 사의 시계는 자체인증을 통과한 R사의 시계에 비해 시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오차의 부분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가격 자체는 10배가 넘게 차이가 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R 사의 시계는 품귀현상을 겪는 것을 보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본래 종이책이 실용적이었지만, 전자책이 나왔을 때 감성을 팔았던 것과 비슷하게, 현대의 기계식 시계는 감성을 파는 존재, 즉 사치재가 된 것이다.

최근 손목시계의 절대강자였던 R 사의 매출을 전자기기 제조사인 A사의 스마트워치가 뛰어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필자는 이것이 실용적인 기계식시계의 시대의 종말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기계식시계는 실용성의 가치 이상의 가치를 이미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기계식 시계를 제대로 말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이들을 예술품으로 대하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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