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을 가득 메우는 포스터와 기사들, 정갈히 놓여있는 책상과 의자. 구석에 자리 잡은 피아노까지. 향수를 불러오는 교실의 모습이다. 불이 켜지면 교복을 갖춰 입은 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입장한다. 학교의 자랑인 이들은 유서 깊은 대학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입학을 준비하는 특별반 학생들이다.

 

인생을 위한 수업, 합격을 위한 수업

헥터는 인생을 위한 수업을 꿈꾸는 문학 선생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문학 작품으로부터 위로 받던 그는, 때때로 문학 속으로 도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교장으로부터 은퇴 권유를 받은 직후, 헥터는 학생들에게 토머스 하디의 시 <북 치는 소년 핫지>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가르친다. 어린 나이에 참전해 관에도 눕지 못한 채 구덩이 속에 던져진 소년병의 이야기는 무대를 넘어 관객의 마음에 와닿는다.

교장은 학생들의 입시 실적을 높이기 위해 옥스퍼드 출신 역사 교사 어윈을 고용한다. 학생들의 답안지에 진부하다는 말을 가득 적으며 등장한 그는 면접위원들을 사로잡으려면 신선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헥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어윈의 수업에 학생들은 술렁인다. 역사를 언제든지 뒤엎을 수 있는 게임으로 여기는 그는, 인도인인 악타에게 영국 제국주의에 우호적인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거나, 유대인인 포스너에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관해 중립적인 답변을 할 것을 제안한다.

 

진정한 배움의 의미

학생을 대하는 교사들은 관객에게 교육의 역할에 대해 묻는다. 직설적인 교사 린톳은 문학 작품이 마음의 양식이라는 가르침이 결국 학생들이 대학에 떨어졌을 때 위로하기 위해 들어두는 보험이라며 헥터를 비꼰다. “문학 작품이 약이고 지혜고 반창고이며 모든 것이라고 하지만, 아니잖아요.” 포스너를 비롯한 학생들도 이미 알고 있다. 문학 작품은 불안한 학생들의 마음에 환각을 보여주는 도피처일 뿐이다.

이들의 수업은 유명한 책이자 영화인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극은 헥터를 영원히 남을 좋은 교사로, 어윈을 인간성이 결여된 교사로 남겨두지는 않는다. 헥터가 학생을 추행한 일을 밝히고, 철두철미한 어윈의 빈틈을 드러낸다. 대학 면접을 준비하는 바쁜 와중에도 헥터, 어윈, 다른 학생과의 관계를 통해 학생들은 성장한다.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선택의 교차로에서 그들은 시에서 노래하는 슬픔, 행복, 죽음에 공감하고, 시는 인생의 예고편이라는 헥터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문학으로 인생을 배우다

<히스토리 보이즈>의 원작자 앨런 베넷은 인물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적절한 시와 희곡 문구를 인용했다. 헥터는 대학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라고 외치며 하우스만의 시 <가장 사랑스러운 나무, 바로 지금, 벚나무>를 인용한다. 이 시의 화자는 스무 살인 자신이 눈 덮인 벚나무를 볼 수 있는 날이 70년 인생에서 5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이제 18살이 된 학생들은 시를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만을 느끼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헥터의 메시지를 전해 받는다.

모두가 그가 인용하는 시 구절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학생은 화자가 느끼는 감정이 자신과 너무 멀어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헥터는 누구에게나 문학 작품이 품은 감정들을 경험할 날이 올 것이라 답한다. 그가 이제까지 다뤄왔던 작품은 학생들을 갑작스러운 슬픔, 절망 등의 고통으로부터 보호해 줄 완화제인 셈이다.

 

교사와 학생, 관계의 전환점

어윈과 학생들이 다루는 역사적 사건도 이들의 관계를 대변한다. 데이킨은 자신이 제출한 에세이를 두고 어윈과 토론하는데, 전환점을 주제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 몽고메리 장군과 알라메인 전투 등을 언급한다. 갑작스러운 히틀러의 명령으로 독일군이 공격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덩케르크 작전은 실패했을 것이다. 또 당시 영국군의 사령관이었던 고트 장군이 전사하지 않아 몽고메리 장군이 알라메인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주도권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순간이 역사를 바꾼 이 사건들처럼, 데이킨이 어윈의 빈틈을 찾아내며 둘의 관계도 뒤집힌다.

모두에게 결함이 있고, 마냥 해피 엔딩이라고는 보기 힘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각본은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넘겨줘라, 때로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현실을 사는 학생들에게 남긴 헥터의 한 마디가, 극이 끝난 뒤에도 극장 안에 맴돈다. 헥터가 학생들에게, 학생들이 어윈에게, 어윈이 다시 학생들에게… 돌고 돌며 전달된 메시지를 건네받은 이들은 다시 현실을 향한 발걸음을 뗀다.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기간 | 2019.09.20.~2019.10.27.
요금 | R석 6만 원, S석 4만 원
문의 |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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