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新-와유기'展, 먹과 붓, 그리고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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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新-와유기'展, 먹과 붓, 그리고 한지
  • 박재균 기자
  • 승인 2019.09.24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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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미술관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한국 미술이 아닌, 한국화가 주는 느낌을 상상해보자.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옛날의 문화, 2019년과는 유리된 과거의 양식, 그리고 약간은 고루한 느낌마저 들지 모른다. 하지만, 미술 사조는 한 시대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시대와 교류하는, 마치 영생을 사는 사람과도 같다. 그러한 점에서 현대의 한국화는 조선 시대의 한국화만큼 자연스러운 개념이다. 현대의 한국화를 감상하며 과거와 현실의 흥미로운 접합을 목도할 수 있는 <한국화, 新–와유기> 전시로 들어가 보자.

 

현대의 한국화, 무엇을 담을 것인가

미술의 가장 풍요로운 피사체는 풍경 그 자체이다. 산보다는 아파트가 더 익숙한 현대인에게서 만들어진 한국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재호의 아파트 시리즈는 철거 직전의 아파트를 담담하게 한지에 묵으로 표현한다. 고전적인 형식과 현대적인 내용의 조우에서 정감이 짙게 배어 나온다. 그의 <북악기념비-정릉스카이아파트>는 다소 어두운 톤으로 아파트의 긴 공용 복도를 각각의 높이에서 응시하고 있다. 선풍기나 에어컨 실외기, 부서진 문들이 복도에 가감 없이 버려져 있다. 아파트라는 개인성이 거세된 공간에서 비로소 입주민들의 삶이 그대로 노출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에 반해, <청운동 기념비 2>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번엔 초점을 훨씬 더 뒤로 빼, 더 많은 아파트가 보인다. 원근법에 의해, 뒤에 있는 아파트는 먹과 목탄의 과감한 사용으로 지나치게 흐릿하다. 하지만 앞에 있는 아파트는 보다 뚜렷한 초점으로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은 상당 부분 단순해져 있다. 그저 허여멀건 아파트 벽에 수많은 검은색 창문이 불규칙적으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북악기념비-정릉스카이아파트>가 철거되는 아파트의 디테일을 근경에서 섬세하게 다루었다면, <청운동 기념비 2>는 원경에서 삭제되는 개인을 다룬다.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는 무언가를 비워냄으로써 공백에서 피어오르는 감상을 전하던 선조의 한국화가 연상된다.

 

추상과 수묵화

전통적인 한국의 수묵화는 붓과 먹을 사용해서 경치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많은 준비 없이도, 그 자리에서 한지를 펼쳐 그려내는 그림은 현대에 와서도 그 세세함에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현대로 오면서 몇몇 작가들은 한국화를 추상으로 재구성했다. 하지만, 디테일이 과감히 생략되었음에도 여전히 경이롭다. 민경갑의 <자연과의 공존 1> 앞에 섰을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4가지 색의 굵은 가로 선이다. 놀랍게도 각각의 선은 몇 개의 뾰족한 지점을 통해 우리에게 산으로 인식된다. 그뿐만 아니라, 평평한 선들인 것 같으면서도 검은색 선이 흰색 선보다 앞에 있는 것 같다는 공간감마저 느낄 수 있다. 가장 앞에 있는 검은 색 선은 산의 돌을, 그 뒤의 흰색 선은 설산을, 그 뒤의 초록색 선은 여름에 푸르게 변한 산을, 가장 뒤의 빨간색 선은 노을이 지는 경치처럼 보인다. 추상화의 미학은 우리가 쉽게 인식하는 형태나 모양, 그 색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데에 있다. 반면 <자연과의 공존 1>은 예술의 현실모방이라는 책무로부터 해방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 무엇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알려준다. 

 

풍경을 변주하는 단순함의 미학

일반적인 한국의 수묵화는 후경을 안개가 끼인 것처럼 단순하게 그리고, 선경을 세밀하게 그림으로써 풍경의 공간감과 근경의 질감을 형성한다. 이를 대기 조망이라고 하며, 비단 수묵화뿐만 아니라 서양미술에서도 많이 활용되는 원근법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정명희의 <날지 못하는 새>는 이러한 대기 조망을 변주한다. 많은 관객은 ‘날지 못하는 새’라는 제목을 보고 그림 속에서 새를 찾으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치 그라피티처럼 빨간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X자를 그은 것이 바로 새이다. 디테일을 잃어버린 새와는 달리, 풍경은 전통적인 수묵화의 대기 조망에 따라 그려져 있다. 자세히 표현된 근경,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위치한 날지 못하는 새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이 과감한 추상화에서는 측은함이라는 정서가 전해진다. <날지 못하는 새>는 한국화의 형식만을 빌린 난해한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둘을 조화롭게 섞어 더 풍부한 감정과 인상을 담아냈다.

새로운 형식을 도입해도, 최근의 미술사조와 융합해도, 한국화는 그 철학을 고수한다. 다만 이러한 새로운 시도와 재구성이 2019년의 한국화에 숨을 불어넣어 주고 그 역동성을 되살려준다. 그 생생함과 역동감을 느끼고 싶다면 우리 학교와 가까운 대전시립미술관으로 떠나보자. 
 

장소 | 대전시립미술관
기간 | 2019.07.16.~ 2019.10.13.
요금 | 500원
시간 | 10:00 ~ 20:00
문의 | 042)270-7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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