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조그만 동네이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가다 산을 하나둘 넘어가다 보면 이제 무엇 하나 안 나올 것 같을 때 불현듯 나타났던 동네, 도시 끝자락의 사람 냄새 나는 그런 동네 말이다.

“아이고 언니야 조금만 깎아주이소.”

요즘 뜸하더니 직거래 장터가 아파트 단지 앞에 또 들어섰다. 밖에서 너무 많이 놀았나,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진동했다. 오이가 한가득 쌓인 트럭에 침을 꼴깍 삼키며 집에 뛰어 들어가면 아니나 다를까,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시원한 오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머니께서 오이소박이를 조물조물 무치고 있으면 침이 꼴깍,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걸 졸라서 비닐장갑 낀 손으로 결국 하나 얻어먹었다. 이 오이소박이는 밥상에 한 번 올라왔다 하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지금이야 아니지만, 꽤 오래전에 나는 어디라 할 것 없이 잘 싸돌아다니고는 했다. 아파트 단지에 숨겨진 길이 있을까 뒤져보고 뒷산 수풀을 헤치고 다니는 것도 좋아했다. 그러다 산 벌레를 몸에 잔뜩 붙여와서 어머니께 혼쭐이 나기도 하고 미아가 될 뻔한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중 하나가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인데 단짝과 다른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1시간 정도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몰라 잃은 것이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공기가 차가워지는데 그때쯤 어머니와 자주 가던 병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병원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온 세상이 깜깜해졌을 때였다. 터덜터덜 걸어가던 중 어묵 장사하시는 포장마차 아저씨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해도 졌는데 어린애들이 왜 이렇게 늦게 다니냐며 나랑 친구의 손에 어묵을 하나씩 쥐여 주셨다. 반짝이는 별들 속에서 온종일 굶주린 배를 달래준 그 어묵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아침에 엄마 목소리가 들려 일어나면,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고 밖에 나가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정이 넘치는 그 동네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하루를 보내는, 그런 하루를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 친한 아주머니, 아저씨들, 친구들, 유쾌한 일들이 많은 동네. 아마 모두에게 고향이란 그런 곳일 것이다. 

계속 살던 집을 떠나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고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바빴다. 집이 생각나기는커녕 부모님께 편지 쓰는 날이 되면 아차 싶어서 얼른 연락드리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고 지금은 가끔씩 예전 생각이 나곤 한다.

“인간은 ‘방랑’에 대한 동경과 ‘고향’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라는 Georg Simmel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가 방랑과 고향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특히 방랑보다는 고향에 대한 동경이 강한 것 같다. 물론 학교에서의 생활도 즐겁고 전반적으로 꽤 만족하고 있다. 좋은 사람들이 많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부모님이 없는 곳에서 주체적으로 생활한다는 게 매력적이다. 하지만 잘 살다가도 문득 예전에 살았던 곳이 아른거릴 때가 있다.

시인 김소월은 고향을 “짐승은 모를지라도 사람은 못 잊는 것, 평소에는 생각도 안 하지만 잠들면 생각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고향이란 엄마가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입에 넣어줬던 오이소박이 한 조각처럼 평생 잊지 못할 그런 맛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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