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이글턴 - '유머란 무엇인가'

적재적소의 농담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할 수 있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만큼 모두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도 없다. <유물론> 등 다수의 저서로 잘 알려진 문학 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유머를 다룬 책을 출간했다. 그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이유, 농담하는 목적 등의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을 유머의 인문학으로 초대한다.

저자는 인간이 웃는 이유를 설명한 수많은 이론을 가감 없이 분석한다. 니체는 인간이 삶과 죽음에서 오는 고난을 외면하려 웃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일부 철학자는 자유롭지 못하고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머가 존재한다는 방출 이론을 지지한다. 이제까지 인간의 웃음은 늘 한결같았다는 새뮤얼 존슨의 말과는 달리, 웃음은 보편적일지 몰라도 획일화된 현상이었던 적은 없다. 오늘날까지도 유머에 대한 이론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각각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유머는 정치적 성질 또한 지니고있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사회 체제의 전횡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농담을 체제 전복적이라 주장한데 반해, 수잔 퍼디는 농담이 권위보다 우세한 경우는 권위를 회복시키려는 목적을 지녔을 때뿐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유머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규범들을 멀리하는 동시에 강화할 수 있어 사회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테리 이글턴은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고약한 테리 이글턴’이라 언급했을 만큼 거침없는 비판과 유머를 자랑한다. 농담이 왜 웃긴 지 세세하게 분석하고, 사회에서 유머가 이용되어 온 역사를 늘어놓는데도 불구하고 저자의 재치 넘치는 문체가 웃음을 보장한다.

누군가가 웃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연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를 움켜쥐며 박장대소하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여러 학자의 입을 빌려 웃음을 위해 사용해온 시간이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외쳤다. 웃음은 하나의 언어이자 정치적 도구이다. 개인의 약점을 가려주는 방패가 될 수도 있고,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어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는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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