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서점과 도서관은 훌륭한 디저트 카페에 온 듯한 기분을 준다. 수많은 책이 진열된 곳에서 먼저 눈으로 책을 음미하고, 그 내용물이 무슨 맛인가 상상하며, 때로는 그것을 뒤적거리며 미리 문장들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책을 찾으면 뼈다귀를 문 강아지처럼 신나게 실컷 물고 빨고 하면서 문장을 읽어 내린다.

근데 이 취미가 요즘 들어 녹록지 않다. 중학교 때만 해도 하루에 책 한 권 읽는 건 꽤나 쉬웠는데 요즘에는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앉은 자리에서 완독해내기가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을 읽는 동안 주변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방금 울린 카톡 알림도 그렇고, 누군가 내 SNS에 댓글을 달았다는 알림과 어제 못다 본 미드, 오늘 새로 올라온 먹방 비제이의 유튜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대차게 끌어당긴다. 주변의 자극적인 손길을 무시하고 고요하고 정적인 행위의 표상인 ‘독서’를 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줄글 소화불량’이 현대인들에게 만연하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질병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완독은커녕, 스토리에 심도 있게 집중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조금만 집중력이 느슨해지면 금방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와 같은 일상적인 무맥락에 빠지거나 심하게는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기도 한다. 이는 모두 우리 뇌가 동적인 외부 자극에 과하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또는, 자극의 역치가 높아졌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책을 읽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모든 책은 그에 맞는 지식적 영양을 포함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섭취하기 위해 문장을 꼭꼭 씹어 키며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 뇌는 그 영양을 얻는 과정에 있어 직접 긴 줄글을 읽고 소화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유튜브, 웹툰, 넷플릭스 등 텍스트가 길어 봤자 두 줄을 넘어가지 않으며, 글을 읽는 동시에 잡다한 자극이 동시에 들어와 심심할 틈이 없는 지식 매체들이 판을 치는 와중에 누가 굳이 책을 읽고 앉아있겠는가.

물론, 이런 미디어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한 자극들 또한 우리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지식적 영양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뇌를 동적인 자극에 맛 들여 정적인 ‘독서’의 설 자리를 잃게 하고 현대인의 지식 소화불량을 야기한다는 것만큼은 명확하다. 

음식에 따라 얻는 영양소의 종류가 다른 것처럼 매체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종류도 다르다. 나는 아직까지 가장 양질의 지식과 소화 과정에서의 건강함을 제공하는 매체는 책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긴 텍스트를 읽어내리는 과정에서 작가의 집필 의도를 파악하고 다른 문장과의 연결성을 매듭짓는 과정에서 우리 뇌가 건강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은 독자에게 다른 매체들만큼의 충분한 자극을 주는 것에 한계가 있기에 그 과정에는 독자의 무구한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을 인스턴트 식품만 먹으며 살 수 없듯이, 평생을 인스턴트 지식만 섭취하며 살 수는 없다. 건강한 뇌와 정상적인 두뇌활동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양질의 지식을 꾸준히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물론 책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잘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쉽고 재미있는 문학들로 시작해 서서히 난이도를 올린다면 어느새인가 아무리 길고 빼곡한 줄글이라도 거침없이 소화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

가끔은, 일상의 외부 자극으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분리하고 책 속의 세계에 오롯이 고립되는 취미를 가져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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