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피츠패트릭 - '도덕과 진화생물학'

최근 <이코노미스트>에 ‘철학자가 별생각 없이 자기 소유라 생각하던 영역을 생물학이 침범하고 있다’라는 아주 도발적인 부제를 가진 기사가 나왔다. 도덕의 기원을 논하는 오랜 논쟁에서, 도덕 철학자들은 도덕 원리의 정당화나 의무의 근본을 정립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 도덕의 기원에 대한 논쟁에 관해, 과학의 영역인 생물의 진화를 더하여 그 결과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책 <도덕과 진화생물학>은 인간의 도덕이라는 개념을 정의할 때 과연 과학적 설명이 이를 도울 수 있을지, 그렇다면 과학에 의해 설명되는 부분은 어느 정도인지, 아니면 종래의 모든 철학적 논쟁을 뒤집으며 과학적 이론만으로 도덕의 기원에 관한 잘 정립된 답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소개한다. 한 번이라도 도덕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책의 내용이 무척이나 흥미로울 것이다.

윤리학과 과학의 교차점을 상술하기 위해, 책은 도덕의 정의부터 다시 짚으며 시작한다. 도덕은 규범적 지침을 따르는 역량, 다시 말해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통해 규범 및 감정으로 동기화되는 인간의 능력’이다. 사람이 도덕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곧 인간에 관한 경험적 사실이며, 이렇게 도덕을 직관에서 나온 경험, 내지는 반응으로만 본다면 충분히 과학의 탐구 과제 중 하나가 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과학적 탐구를 어느 정도로 도덕의 근간에 산입할 것인지에 대해선 많은 연구가 있다.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사고에 고도의 자율성이 있다고 가정한다. 자율성 가정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특수한 경향에 좌우되기보단 당면한 문제에 적합한 독립적 규범을 따르는 사고 활동에 기반을 두어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적 추론이나 작곡 같은 추상적인 영역에서 사람이 자율적으로 지성을 활용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도덕 판단에 대해서도 다른 수학, 과학적 명제들과 비슷하게 자율성 가정을 적용한다. 어떤 사람이 가진 도덕적 믿음이 그가 자리한 문화적 맥락을 배경으로 하는 도덕적 반성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는 자율성 가정이 도덕 판단 영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지 않는다. 되려 몇몇 경우에만 자율적 사고가 발휘되고, 도덕적 믿음으로 이끄는 그 밖의 과정은 주로 감정적 적응 같은 진화과정에서 축적된 심리적 성향의 영향을 받는 것일 수 있다고 본다.

진화적 영향이 도덕적 사고와 감정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한다는 주장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주장도 있다. ‘순전한 합리화 가설’은 도덕 판단에 도덕적 믿음을 부여하는 것은 사후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축소주의적 견해는 도덕적 믿음이 주로 진화적 배경으로 형성된 감정에 의해 발생하며, 인간은 이러한 믿음에 대한 합리화를 해냄으로써 그 인과적 기원을 가린다고 주장한다. ‘인종 간 결혼은 도덕적으로 그르다’라는 주장은 몇 세대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그럴듯했으나, 지금은 이 판단이 인종적 편견에서 나온 오판이라 생각된다. 몇 세대 전의 사람들은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것을 옳다 결론 내린 것이 아니다. 그저 편견이 영향을 미쳐 생긴 견해에 대한 사후적 합리화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설명이다. 물론 이러한 축소주의적 모델에서 편견의 형성에 진화적 영향이 얼마나 연관되었을지도 따져봐야 하겠지만, 자율성 가정을 상당 부분 부인하고, 이를 진화적인 본능이나 감정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검증에 대한 많은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도덕률의 근간을 조금 다른 각도로 탐구해보려는 시도 중 하나로 여긴다면 본능과 감정이 도덕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과연 도덕률이 절대적인 진실로서 존재하는지와 같은 도덕의 본질적인 쟁점들을 다시 한번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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