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k Johansson, 2019/Full Moon Service, 2017

양털을 깎아 구름을 만들고, 매일 다른 모양의 달로 하늘을 장식한다. 상상 속에서나 펼쳐질 광경이 사진 속에 담겨있다. 스웨덴 출신의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은 필름 속에 상상을 담아내는 초현실주의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디지털 기반의 합성 사진이 아닌, 작품의 모든 요소를 직접 촬영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와 구별된다. 최근, 한국과 스웨덴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예술의전당에서 <에릭 요한슨 사진전>이 주최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Stellantis>와 <The Library> 등의 신작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걷기 귀찮아 풍선에 묶여 떠다니는 개가 관객을 맞이한다. 열기구로 곳곳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부, 액자 속 그림에 갇힌 배를 강에 흘려보내는 아이 등 에릭 요한슨이 어린 시절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겨있다. 모든 작품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인물의 표정, 소품, 풍경, 제목이 주는 힌트로 관객들은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유추한다.

에릭 요한슨은 단조로운 일상의 현상들에 엉뚱한 의심을 제기한다. 매일 달라지는 달의 모습은 달 교체 서비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은 사실 거대한 물고기의 등이었을 수도 있다. 엉뚱한 상상에서 비롯된 장면을 담은 작품들이지만, 현실과 닿아 있기 때문에 관객의 공감을 사기도 한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뜻의 <Demand & Supply>는 섬 아래를 깎아 위의 마을을 짓는 장면을 담고 있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지반이 사라져 위태로워지는 모습은 현대의 자원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전시장 곳곳에는 작품 속 인물이 되어볼 수 있는 공간들도 있다. <Impact> 앞에서는 액자 바깥으로 튀어나온 깨진 땅 조각들이 마치 그림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신작인 <Stellantis> 옆에는 작품에 등장하는 대형 족집게를 잡고 포즈를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Closing Out>에 등장하는 양은 조형물로 제작되어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으며, <Full Moon Service>에서는 직접 달을 옮겨 다는 사람이 되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Full Moon Service> 옆에는 그의 작업 과정이 소개되었다. 작품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기획하는 데에만 최대 12개월이 걸린다. 에릭 요한슨은 평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를 메모, 스케치해 둔 뒤 충동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사전에 오랜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데 반해, 사진 촬영 과정은 대부분 일주일 안에 끝난다. 사진 촬영이 끝나면 사진의 구도를 수정하고, 세부 요소를 살리는 처리 과정을 거친다. 한 작품을 위해 약 150개 이상의 레이어가 사용된다. 특이한 것은, 실제 작업에 필요한 시간은 약 20시간임에도 사진 처리 과정을 완료하는 데에 최대 6개월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작가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보기 위해 한 달 이상 그 작품을 잊어버리려 노력한다고 언급했다.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 작품이 탄생하기 때문에, 1년에 8개 내외의 작품만이 공개된다.

 

©Erik Johansson, 2019/The Architect, 2015

침대 밑에서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등 불편하고 어두운 장면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어딘가 익숙한 이 작품들은 지난밤의 악몽을 담은 기록들이다. 20세기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마그리트, 달리, 에셔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Impossible Escape>, <The Architect>, <Dreamwalking> 등의 작품이 말해주고 있다. <The Architect>의 한구석에는 작품의 아이디어가 된 정다면체의 전개도와 실제로는 만들 수 없는 도형이 그려진 스케치가 등장한다. 건물의 안과 밖, 길의 방향을 구분할 수 없어 스산한 분위기에 혼란이 가중된다.

끝나지 않는 악몽에서 잠시 눈을 돌리면 아이디어로 가득한 작은 방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공간은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에릭 요한슨의 스튜디오를 재현한 것으로, 실제 스튜디오를 방문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작가의 책상 앞에는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가 놓여 있다. 벽 한쪽에는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붙어있는데, 이는 작업실에 방문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방문자들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남겨두는 작가의 습관이다.

에릭 요한슨의 작업 과정을 기록한 영상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다. 영상에는 그가 소품을 제작하고 장소를 섭외하는 모습, 촬영 과정과 포토샵 리터칭 작업이 담겨있다. 영상의 모든 장면은 작가가 직접 편집하기 때문에, 작품에 관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작가가 촬영한 소품 일부는 전시장에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전시는 <All Above>라는 작품으로 끝을 맺는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온 인물은 백화점이 아닌 숲속에 도착한다. 숲속을 헤메는 인물의 모습은 현실의 경계를 잃고 에릭 요한슨의 작품 속에 빠져든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출구 앞에 선 관객에게 전시는 정해진 규칙에 의문을 가져볼 것을 제안한다.

사진작가로서 에릭 요한슨의 작업은 주로 현실을 포착하는 것이지만, 그는 카메라에 담긴 사진으로부터 상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에릭 요한슨은 상상력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현실 세계에서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창문을 만들고 싶었다며,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다고 외치는 그의 작품 안에서, 한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눈을 질끈 감고 날아가는 풍선에 매달려보자. 어떤 이야기 속에 도달할지 궁금해하면서.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기간 | 2019.06.05.~2019.09.15.
요금 | 12,000원
시간 | 11:00~20:00
문의 | 02) 837-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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