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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밤, 그 가야금 소리 황병기를 만나다
[316호] 2009년 03월 11일 (수) 이효나 기자 same-emas@kaist.ac.kr

해설과 함께 들려주시는 연주회여서 더욱 즐거웠 던 것 같은데, 이와 같은 연주회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클래식 연주회는 딱히 아무 말 없이 무대에 나와 노래만 부르고 들어가지요. 하지만, 국악에서는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르익고 자연스러워지면 그에 맞춰 연주를 시작하지요. 이는 사랑방에서부터 내려져 오는 전통입니다. 대화도 하고 음악도 듣고. 서양 클래식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음악을 대한다고 할까요. 이에 따라 청중도 음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청중과 연주자의 관계가 자연스러워 질 수 있습니다. 해설을 통해 상호 소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인의 음악이‘재미없는 맛’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보통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것은 얕은 것을 의미합니다.
 커피에 비유하자면, 사람들이 보통 맛있다고 하는 커피는 설탕과 크림이 모두 다 들어간 커피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사람들이 말하는 맛있는 맛은 커피 본질의 맛이기보다는 설탕과 프림의 맛이지요. 그렇게 설탕과 프림이 들어간 커피만 먹다 보면 커피 본연의 맛을 잊어버리게 됩니다.진짜 커피를 느끼고 싶은 사람은 블랙커피를 마시죠. 블랙커피는 맛이 없어요. 쓰지요. 쓰지만, 그 맛을 알면 기가 막힙니다.
 음료 중에서 보통 청량음료를 맛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는 물일 것입니다. 산 속의 깊은 샘물이 비록 맛이 없고 재미없더라도 마시다 보면 다른 의미에서 맛이 좋지요.
 저 역시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 대중들도 그것을 원합니다. 맛이 없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가 물인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의 독창성이 뛰어나게 되면 보편적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면서도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침향무’나 ‘비단길’을 작곡할 때 딱히 전 세계적인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범 아시아적인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국악을 단지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기보다는 아시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제 음악은 서양의 음악을 모방하지 않았고 우리나라 음악 역시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예전에 작곡한 작품도 흉내내지 않았습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냈습니다.
 스님이 하는 참선 중 앉아서 나뭇잎 하나만 바라보는 것이 있습니다. 단지 나뭇잎 하나만 보면서 우주 전체를 터득하려고 합니다. 저 역시 제 속을 깊이있게 파고 들어가고 작품활동을 하다보면 언젠간 이것이세계성과도 맞닿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작곡한 곡 중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 있나요
 특별히 좋아하는 곡은 없습니다. 그것은 부모에게 자식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작품은 자기 자식과 같습니다. 못생기면 못생긴 대로 잘생기면 잘생긴 대로 좋아요. 하지만,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곡을 뽑자면‘침향무’입니다. 음반 중에서도 ‘침향무’가 가장 많이 팔립니다.

서울대학교 법학대학를 다니시다가 가야금 연주자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가야금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했습니다. 하지만, 음악가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목적 없이 가야금을 켜는 것이 좋았습니다.
 저는 무엇을 할 때 목적이 있으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모든 경우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도 딱히 무슨 목적이 있어서 만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에는 결혼이라는 목적도 없어야 합니다. 저는 음악 역시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좋아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법대에 다니면서도 매일 국악원에 가서 가야금을 배우고는 했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저는 아무 욕심도 없고 계획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루고 싶은 것이 특별히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현재에 충실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
 KAIST는 과학도의 학교지요. 과학도일수록 예술에 대한 갈망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아들이 수학자인데 오늘 KAIST 수리과학과에서 특강을 했습니다. 아들이 말한 바로는 수학을 하더라도 예술적 영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수학문제를 풀더라도 상식을 깨는 기발한 착상이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는 예술과 통합니다.
 예술의 특성이란 상식을 깨는 것이지요. 과학 역시 같은 사물, 문제를 보더라도 상식을 깨는 시각에서 보아야 합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지요. 보통 사람은 사과가 떨어지면 그냥‘사과가 떨어지네!’라고 생각하지만, 뉴턴은 만유인력을 생각해냈지 않습니까. 엉뚱한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착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적 영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번 호부터 문화계 명사를 만나 관련 분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명사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추후 발표될 명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 문 이 있 다 면 이 효 나 기 자 (same-emas@kaist.ac.kr)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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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는 누구?
 1936년 5월 31일 서울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가야금 연주자로 현대 국악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인 중 한 명이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해 경기고등학교 시절,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명인인 김영윤, 김윤덕, 심상건을 사사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학생으로는 특별하게 대학 2학년 때 KBS 주최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1963년까지 서울대학교 음대 국악과에서 가야금을 가르쳤다. 연주가였던 그가 최초로 작곡을 시작한 때는 1962년이다.
 이후 1963년에 최초의 작품‘숲’을 발표하면서 음악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반향의 여파로 1964년부터는 유럽, 미국, 일본, 동남아, 중국 각지를 돌며 가야금 독주회와 더불어 음악 강연을 했다. 1965년에 한국과 미국에서 음반 취입을 하면서 그의 곡은 전세계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5년 문화공보부 제정 국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단국대학교 명예음악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작품
 1987년부터‘침향무' 외에‘비단길', ‘미궁', ‘깊은밤, 그 가야금 소리' 등 5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2007년‘달하 노피곰'을 발표한 후 현재까지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침향부
‘침향무’에서 작곡자는 판이하게 새로운 음악세계에 도달했다. 서역적인 것과 향토적인 것을 조화시켰고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법열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신라 불교세계를 음악에서 추구한 것이다. 침향은 인도 향기의 이름으로, 이 곡의 제목은 ‘침향이 서린 곳에서 추는 춤’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 곡의 음계는 불교음악인 범패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가야금의 조현이 새롭다. 또한, 이 곡에서 장구는 독자적인 위치에서 단순한 반주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손가락으로 두드린다든가 채로 나무통을 때리는 등의 기교를 통해 특이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미궁
시대를 뛰어넘은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곡이다. 음악의 파격성 때문에 초연 당시 관객이 비명을 지르며 공연장을 뛰쳐나간 일화가 있으며, 인터넷상에는 이 곡을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괴소문까지 나돌았다. 일부에서는 이 곡을 산업화로 인해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부조리를 고발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황병기 본인은“초현대적인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문명 이전의 인간, 생명체로의 인간의 한 주기, 언어 이전의 소리를 표현하려 했다"라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로 작품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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